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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재협상’ 가능성 얼마나 되나

당국자·전문가들은 “가능성 낮다”고 하지만 백악관 대변인 “모든 무역협정 재검토하겠다”
2017.02.23 18:50 입력


재협상 땐 철강·화학·자동차 부문 큰 피해
섬유·원단·의류 중소기업 업종도 타격 우려



“모든 무역협정을 재검토하겠다.” 2월 21일(현지시간) 션 스파이서 미국 백악관 대변인이 한 말이다. 스파이서 대변인은 일일 정례 브리핑 중 브라질과의 무역관계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우리가 전 세계에서 체결한 무역협정을 검토하고 많은 경우 미국과 미국 노동자들에 이익이 되도록 업데이트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 대선 유세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주도한 한국과의 무역협정 때문에 우리는 또 다른 일자리 10만 개를 뺏겼다”고 말하며 한-미 FTA 재협상의 의지를 시사한 바 있다. 트럼프 대선캠프 정책보고서에 따르면 한-미 FTA로 미국 내 9만 5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미국의 한국에 대한 상품수지 적자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2014년 250억 달러, 2015년 283억 달러를 기록했고 2016년 1월부터 10월까지 240억 달러로 나타났다.


현재까지 밝혀진 트럼프 정부의 통상 참모진은 윌버 로스 상무장관, 피터 나바로 국가무역위원장, 로버트 라이시저 UTSR 대표다. 이 세 인물은 모두 중국 전문가로 보호무역주의, 자국우선주의, 대중강경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특히 윌버 로스를 사령탑으로 하는 상무부가 통상정책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한-미 FTA의 향후 운명도 이들의 움직임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 FTA 재협상 가능성은

대부분의 전문가는 아직까지 한-미 FTA 재협상의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한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2월 14일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아직까지 재협상 움직임은 없다”면서도 “트럼프 행정부가 보호무역기조를 강화하는 것으로 보이고 있어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미 FTA 재협상을 논하기 전 셰일가스 수입 등을 늘려 대미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유 총리는 “제조업 쪽에서 미국산 수입을 촉진하는 여러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했다.


산업부 관계자도 “(스파이서 대변인의 발표는) 새로 정책을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나왔던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재확인한 수준”이라며 “아직 미국에서 구체적인 정책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섣불리 예단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앞서 주형환 산업부 장관은 지난달 열린 기자단 간담회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모든 FTA에 대해 점검하겠다고 한 만큼 정부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주요 연구기관들의 의견도 비슷하다. 현정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은 2월 20일 열린 ‘트럼프 출범 한 달, 미 통상정책 평가 및 전망 대토론회’에서 “트럼프가 대선후보였던 시절 한-미 FTA를 ‘일자리 킬러’로 지칭했지만 현재까지 특별한 언급은 없는 상황”이라며 “퓰너 미국 헤리티지재단 이사장 역시 전면적 가능성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고 했다.


이시욱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도 ‘트럼프 정부 통상정책 기조의 이해와 대응방향’ 브리핑에서 “단기적으로는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은 적다”며 “한국엔 반덤핑, 상계관세 등 무역 구제조치를 통한 압박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스티븐 로치 예일대 경영학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미 FTA 재협상은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미 FTA는 NAFTA와 TPP에 비해 큰 이슈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재계는 ‘한-미 FTA 재협상’에 대한 긴장을 놓지 않고 있다. 재계는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관련 정책이 심화되고 있어 재협상이 언제 이뤄질지 모른다는 분위기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미국의 관세가 1% 증가할 경우 한국의 대미 수출이 약 0.59% 감소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한-미 FTA는 한-중 FTA에 비해 개방 규모가 커 FTA 재협상이 이뤄질 경우 특정품목의 양허제외, FTA특혜세율 조정, 한국산 원산지 규정의 강화, 원산지검증의 강화 등의 형태일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한-미 FTA가 폐기될 경우, 한국에 약 15조 원이 넘는 경제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현경연은 ‘트럼프 보호무역주의 확산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한-미 FTA 폐기로 대미 수출에 대한 관세가 FTA 발효 이전 수준으로 상승할 경우 2017~2020년 한국의 대미 수출 총손실액 추정치는 약 130억 달러”라고 발표했다. 손실액은 2017년 30억9000만 달러, 2018년 32억 달러, 2019년 33억 1000만 달러, 2020년 34만 2000달러로 예상했다.


국내 고용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현대경제연구원은 “4년 간 12만 7000여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권용현 이정관세법인 이사는 “북미지역에 대한 수출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우리나라의 경우 다양한 산업군에서 큰 손실이 예상되며 비단 수출뿐 아니라 수입의 경우도 그 파급효과를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철강·화학·자동차 부문의 피해가 가장 클 것

한-미 FTA를 반대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집단은 AFL-CIO(미국노총산별노조), IAM(국제기계연합), USW(전미철강노조) 등이다. 이는 한-미 FTA 재협상이 이뤄질 경우 철강, 기계업종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것임을 예고한다. 철강뿐 아니라 화학 분야에서도 미국은 지속적으로 반덤핑 제소를 하고 있다.


특히 화학제품의 경우 한-미 FTA에서는 가공공정기준을 적용하여 한국산을 인정해 주고 있다. 협정에서 규정한 필수 제조공정을 한국에서 수행만 하면 원산지를 인정받을 수 있다. 이는 세번변경기준이나 부가가치기준과 비교해봤을 때 상대적으로 덜 까다로운 원산지규정이다. 따라서 화학 분야의 피해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권용현 이정관세법인 이사는 “화학제품에 대한 원산지결정기준이 다른 제품군처럼 세번변경기준이나 부가가치기준 적용으로 변경될 경우 한국산 여부에 대한 이슈가 발생될 수 있으므로 아주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이시욱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한-미 FTA 발효 이후 확대된 대미 상품수지 흑자 대부분은 자동차 수출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전체 무역적자의 20.6%가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에서 발생했다. 그중 주요 4개국(일본, 멕시코, 독일, 한국)에 대한 적자가 82.6%를 차지하며 자동차 분야에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권 이사는 “대미 수출 제품 중 섬유, 원단, 의류의 경우(HS code 59류~63류를 수출하는 기업)는 자동차, 철강, 화학업종과 비교하여 중소수출기업들이 많기 때문에 한-미 FTA 재협상시 충분한 대비 없이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 업종에 대한 보호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권 이사는 “보호무역주의로 인한 미국세관(CBP)이 수입통관절차를 더욱 까다롭게 할 것이고 한-미 FTA 원산지증명서에 대해 기존과는 달리 담당 세관공무원의 선행심사 후 적용될 가능성도 있으므로 원산지증명서를 비롯한 Invoice, Packing List, B/L 등의 상업서류(선적서류)를 사실관계에 근거하여 정확히 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산 제품, 한국산 제품 등 원산지 이슈가 워낙 불거지고 있기 때문에 FTA 원산지판정의 근거소명자료의 구비 및 보관도 중요하며 제품에 붙이는 원산지표기 라벨링도 중요하게 다루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조언했다.


이지연 forga707@kit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