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관세법인 컨설팅본부 박준철 관세사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면서 보호무역주의가 전 세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보호무역주의는 무역수지의 개선이나 국내산업 보호를 목적으로 수입을 제한하는 것으로, 세계 최대 소비국인 미국이 보호무역주의를 표방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세계의 수출입 물량을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보호무역주의는 어떠한 방식으로 실현될까? 가장 쉽고 직접적인 방법으로는 수입관세의 인상, 수입할당제의 강화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WTO를 중심으로 자유무역주의를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미국이 일순간 보호무역주의를 강하게 추진한다면 타국의 강한 반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반발을 줄이면서도 수입을 억제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비관세장벽이다. 비관세장벽은 학자, 국가, 국제기구에 따라 정의와 범위는 다르게 나타나지만 일반적으로는 관세이외에 수출입을 억제하는 모든 무역관련 장벽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비관세장벽의 범위는 점점 더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장벽의 범위가 수치화 되어 있는 관세장벽과는 달리, 각국의 법령 및 제도에 의해 수입 및 판매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실태와 현황 그에 따른 애로사항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법령 및 제도운영이 불투명한 국가일수록 수출국으로서는 시장진입이 더욱 까다로워 실질적인 수입억제 효과를 불러오게 된다.
비관세장벽은 식품 및 동식물 위생검역(SPS)과 기술장벽(TBT)으로 대표되며, 전자는 농수산물, 식품, 건강기능식품, 의약품, 화장품 등에 대한 검역을 말하고 후자는 전기용품, 무선통신기기 등의 기술이 포함된 전기전자제품을 대상으로 한다.
비관세장벽은 기본적으로 WTO 협정을 근거로 WTO의 산하 위원회를 통해 해소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는 2012년 10월 인도에서 15개 전자제품에 대한 새로운 안전인증 도입을 발표하였고, 이 규제의 시행까지 6개월의 유예기간을 부여하였는데 실제 대상품목인 TV, 모니터, 컴퓨터 등은 해당기간 내에 인증 획득이 불가능하였다.
우리나라의 국가기술표준원은 WTO TBT 협정을 이용, TBT 위원회를 통하여 인도 측의 규제당국과 협의를 진행하였으며, WTO TBT 협정을 근거로 6개월의 유예기간을 추가로 연장하여 우리나라 기업은 원활하게 수출을 진행할 수 있었다.
2013년 2월 EU가 불소화 온실가스 냉매의 사전충전을 금지하는 규제를 시행함에 따라 우리나라의 냉장고, 에어컨 등 주요 수출 제품에 타격이 불가피하게 되었는데, 우리나라는 이러한 규제를 WTO TBT 위원회를 통해 해당 규제를 철회한 사례도 있다.
두 번째로는 외교적인 합의를 통하여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EU는 10년여 동안 우리나라의 수출기업에게 BSCI(Business Social Compliance Initiative, 기업의 사회참여 프로그램) 감사를 받도록 하여 수출에 불이익을 받고 있었다. 이로 인한 불이익을 받은 해당 수출업체는 한국무역협회 비관세장벽협의회에 도움을 요청하였고, 한덕수 전 무역협회장은 2013년 대통령경제사절단의 일원으로 유럽유통협회를 방문하여 우리나라를 노동위험국 리스트에서 제외하여 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한 결과 유럽유통협회는 한국을 노동위험국에서 제외하였다.
이러한 비관세장벽은 배타적인 무역협정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양국 간의 합의를 전제로 완화되기도 하고 양국의 시험결과나 인증을 인정하여 주는 상호주의가 채택되기도 한다. FTA는 세간에 널리 알려진 관세인하 효과 이외에도 보이지 않는 비관세장벽의 완화로 무역 증진에 일조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2011년 EU와 FTA를 발효하면서 단계적인 TBT 장벽 인하를 합의하였고 방송통신위원회는 ‘한-EU FTA 체결에 따른 방송통신기자재 등의 적합성평가 상호인정에 관한 고시’를 제정하여 원산지가 EU인 제품에 대한 전자파적합성(EMC) 및 전기안전(Electric Safety) 시험을 EU 내에서 사전에 받은 시험성적서로 대체를 인정하여 국내에서의 별도의 시험 없이 신청만으로 적합인증 및 적합등록을 허가하였다.
최근에 체결된 한-중 FTA의 경우에도 역시 제5장에서 ‘위생 및 식물위생 조치’에 “양국 간의 무역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을 달성하기 위하여 양국은 위생 및 식물위생 분야의 기술협력 기회를 모색한다”는 규정을 두어 비관세장벽을 완화하는 근거조항을 마련하였으며 위생검역 분야의 사안을 다루기 위한 기구로 SPS 조치에 관한 위원회를 설치하도 규정하고 있다.
중국은 자국 내 위생기준의 강화 등으로 비관세장벽이 매우 높고, 그 절차 또한 선진국의 그것에 비하여 불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므로, 현재까지는 비관세장벽 철폐를 위한 구체적인 안이 협의된 바는 없다. 하지만 한-중 FTA의 비관세장벽 완화를 위한 근거 규정의 이행에 각별하게 신경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살펴본 것처럼 비관세장벽은 다양한 형태로 발생하고 정량화 되지 않는 측면이 있어 수출입 기업으로서는 이를 좀처럼 파악하여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관세장벽과는 달리 현지의 법률과 행정절차에 대한 변동사항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데, 이 또한 상당히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시간적, 비용적인 측면에서 수출업체에게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비관세장벽의 활용은 각 국마다 정치적, 외교적인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하므로 이에 대해 예방은 현실상 어려운 것이 사실이나, 상기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분명히 존재하므로 주위의 무역전문기관과 수출입 전문가를 활용한 신속한 대응이 중요하다 하겠다.
■BSCI(Business Social Compliance Initiative) = 유럽유통협회(FTA: Foreign Trade Association)가 주도하는 제도로서, 회원사들로 하여금 노동착취의 우려가 있는 노동위험국을 대상으로 감사를 실시하여 노동인권이 보호되지 않는 국가로부터의 수입을 억제하는 제도